심선영 Sunyeong, Sim
2025.  갤러리그림손 아트디렉터

 
사의성(寫意性) 안에 담은 노마드
 
우리가 마주하는 풍경은 단지 현재의 시점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와 미래의 시점이 교차하며 각자의 감정과 기억, 이상이 더해져 재구성된 이미지다. 같은 풍경일지라도 바라보는 이의 시점과 감정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 때로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여러가지 생각과 이상을 담거나 지워내기도 한다. 이렇듯 풍경은 우리에게 감정의 매개로 작동한다.
김민지 작가가 풀어내는 풍경이미지는 독특한 시점에서 바라 본 풍경이다. 이동하는 차 창밖으로 비오는 풍경을 수묵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청소년 이후 줄곧 거주지를 이동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다. 고향인 강원도 인제를 시작으로 영천, 대구, 춘천, 공주 다시 춘천으로 이동하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는 춘천에 정착을 하여 작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 여정은 작업의 흐름과 함께하며, 풍경은 시간과 거리 속에서 감정의 결을 지닌 채 다가왔다. 작품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비 오는139km 풍경>, <비 오는168km 풍경>, <비 오는770km 풍경>, <비 오는0km 풍경>는 작가의 여정이며 내면의 감정지도이다. 더불어 <나무> 시리즈 또한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와 개념을 세우는 상징적인 존재이다. 김민지 작가가 왜 거리에 대한 이야기와 비, 나무,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지가 주목할 부분이다. 작가는 비 오는 창밖의 풍경, 그 풍경 속에는 집과 나무가 포함된 풍경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작가의 시점은 차 안에 있고, 작가가 표현하고 있는 시점은 창밖의 풍경이다. 안과 밖이 분리된 창이라는 경계를 통해 저 너머의 풍경을 표현하는 것이다. 창 안의 ‘나’와 창 밖의 ‘타자’, 거기에 보여지는 풍경은 낯선 세계이자 스쳐가는 순간이며, 끊임없이 갱신되는 정체성의 은유다.
창에 떨어지는 빗방울과 뿌옇게 보여지는 풍경은 속도와 시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작품의 이미지를 보면, 마치 그 순간을 사진에 담은 찰나, 순간의 기억을 표현하고 있는 듯한 정지된 화면 같다. 그 순간이 지나면 물방울은 다시 흘러내릴 것이며, 풍경 또한 새로운 풍경으로 바뀔 것이다. 이렇게 많은 이동을 하면서 작가는 정착이라는 개념을 나무로 투영하고 있다. 나무는 땅에 뿌리를 두고 있는 생명의 흐름,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보여주며 시간의 축적으로 순환과 기억의 존재이다. 존재의 근원을 상징하는 나무를 통해 작가는 관계와 메타포의 연결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 곳에 유유히 서 있는 나무는 곧 작가가 바라는 이상이며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다. 나무와 함께 표현된 창밖에 떨어지는, 또는 고정된 물방울은 나무 앞에서 그 형태를 드러내고 나무보다는 작가의 감정을 더 드러낼 수 있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보면서 작가는 감정적 요소로 시작하여 표현적 요소로 이어지는 내면의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우리는 비 오는날의 풍경을 보면서 차분하고 사색적인 사유를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에게 그날은 사색보다는 이동하는 시간과 거리, 과정으로 인한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 변화에 따른 불안정한 위치, 삶으로부터 풀어내야 할 과제들을 상기시키는 노마드의 은유로 다가온다. 본질적으로 김민지 작가의 작품은 노마드적인 존재방식에 닿아 있다. 들뢰즈(Gilles Deleuze)가 말하는 노마드는 끊임없이 이동, 변주하며 새로운 사유, 관계를 생성하는 주체이다. 이와 같이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개념은 들뢰즈(Gilles Deleuze)의 노마드 관계처럼 유동적 흐름을 수용하고, 그것에 대해 자신의 이야기를 조형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는 수묵의 농담만을 이용하여 스며듬과 번짐, 여러겹을 쌓아올린 먹의 중첩을 통해 기억 속에 있는 한 부분의 풍경을 흐릿하고 아련한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수묵이 가지고 있는 사유의 방식과 자연의 흐름은 작가의 시간과 맞닿아 있다. 한지 위에서 나타나고 사라지는 먹의 흔적들은 단순히 형식의 결합이 아닌 정신과 수행의 예술이기에 작가가 사용하는 먹은 단순한 재료이기 보다는 먹으로 파생되는 의미와 사상을 담고 작품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림을 보지 말고 읽어라” 라는 말은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사의성을 바탕으로 한 말이다.
그러나 현대미술에서는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거나 그 의미를 역으로 풀어내는 다중적 해석이 존재하고 있는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에 수묵만을 가지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작가는 분명히 그림을 통해 어떤 본질을 담고자 하였으며, 그림이 곧 ‘나’ 그 자체이며, 존재의 문장이라는 것을 제시하는 것 같다. 작가의 작품은 이동거리에 따라 현재에 이르기까지 풍경의 변화가 조금씩 있어 왔다. 비오는 날의 거친 물방울은 점차 추상적인 여백으로 표현되기도 하며, 나무의 형태는 사실적인 면에서 서서히 확장되어 보이기도 한다. 먹의 색도 변화를 주어, 현재에는 다양한 먹의 색감으로 채색적인 느낌을 함께 느끼기도 하면서 좀 더 동적인 표현에서 정적인 표현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그녀가 살아온 장소, 거처의 흐름에 따른 감정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의 향후 풍경은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 될지가 궁금하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우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지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 지점에서 사의성과 노마드의 본질은 자연스럽게 교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