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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연 Hyoyeon, Kang
2019. 누스페어 동시대미술연구소
내 안의 풍경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풍경을 접한다. 일상 속에서, 도심 속에서, 자연 속에서, 그러나 그 풍경은 삶의 내적 외적 요소들로 얽히고 설켜 실제 어떤 풍경을 이루고 있는지, 그 아름다움을 느끼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이다. 그런데 오랜만에 자연풍경의 아름다움을, 우리 주변이 아름답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시켜준 젊고 앳된 작가를 만났다. 수묵이라는 전통적 매체를 통해 창밖 풍경을 담아내는 김민지 작가는 단순히 자연스러운 풍경만을 담아내지는 않았다. 창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 순간을 포착하고, 심리적 상태 혹은 심정이 자연의 환경적 요소에 더해져 작가의 차 창밖의 풍경화는 실제 풍경이면서 은유적인 풍경으로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어린 시절부터 고향을 떠나 학업을 해야 했고, 그로 인해 작가에게 버스 여행은 일상이 되어버렸지만, 고향을 오가며 접하게 된 고향의 모습은 어느 순간 가까운 듯, 멀게 느껴졌다고 한다. 9년이란 세월을 통해 너무나 익숙했던 고향이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주말에 한번, 때론 한 달에 한두 번 찾게 되는 고향은 차츰 자신을 품어주었던 곳이기보다는 주변인들의 공간으로 변했을 것이고,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과 영역은 축소되어 고향은 가까운 듯 먼 곳이 된 것이다. 또한, 고향을 향하는 버스는 누구에게나 즐거움과 설렘을 안겨준다. 이어 고향을 뒤로하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는 상황은 아쉬움으로 슬픔과 허전함이 따를 것이다. 그런 작가의 현 상황 혹은 그 느낌을 바로 버스 창문이 대신해 준다. 고향을 오가는 버스에 오르면 묘하게 비가 많이 왔다고 했다. 그래서 창밖 비 오는 풍경을 자주 접할 수 있었고, 창에 맺힌 물방울과 창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는 작가의 마음을 반영하듯 자연적인 풍경과 섞여 작가 내면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온 것만으로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컸을 텐데…. 이렇게 창을 통한 풍경은 작가의 내적 요소와 외부 풍경이 더해져 화폭에 담아낼 수 있었고, 매력적인 풍경화로 완성될 수 있었다.
수묵이 가진 특징 중 가장 매력적인 것은 담백함이 아닐까 싶다. 검은색 하나로 다양한 느낌을 담아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표현하기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수묵 기법으로 대상의 의미를 담아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문인 화가들이 수묵을 통해 그토록 외형보다는 내재적인 정신이나 의취(意趣)을 강조한 사의(寫意)적 표현에 매진했는지 모르겠다. 김민지 작가가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했지만, 이론적 배경을 통해 옛 문인 화가들이 추구했던 사의적 표현에 집중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수묵의 담묵과 농묵을 적절히 이용해 창에 맺힌 물줄기와 그 너머 풍경을 그려내고 있으며, 이는 하나로 보이기도 하고, 분리되어 보이기도 하는데 유리창과 풍경 이미지는 서로 적절하게 섞여 다양한 풍경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인간의 미묘한 감정과 자연이 만들어 준 표정 속에서 형태는 갖추고 있으면서도 각각의 의미를 달리 담아내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비 오는 우이동의 풍경>은 거센 빗줄기로 차 창밖 풍경은 흐려지고 꼭 물이 번져 아주 뿌연 풍경이 되었지만 너무나 강렬하게 현상을 담고 있어, 구상화이면서도 추상화처럼 보인다. 그 외 2018년 작품 <비 오는 139km의 풍경>들은 그때그때, 차의 속도와 대상과의 거리감으로 창밖 풍경은 멀리 있다가도 가까이 다가오고, 차창에 맺힌 빗 방물의 크기와 형태로 풍경은 뿌옇게 보이기도 하고, 때론 선명하게도 보인다. 풍경화는 전체적으로 차 창밖의 비오는 날의 풍경을 담고 있지만 각기 다르게 연출되어 작가의 풍경화는 지루하지가 않다. 애틋하고 고요하며 약간은 멜랑꼴리하다. 그래서 가슴 한구석에 울려 퍼지는데, 이러한 간절한 느낌을 간직한 채 작가가 끊임없이 전진하길 바란다. 아직은 작가가 젊어서 꾸준히 작업에 매진할 수 있을지 약간의 의문을 갖게 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결과는 작가의 타고난 재능과 노력이 더해진 것으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해줄 것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