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국 Jinguk, An
2022. 미술비평
 

중력의 시간: 나에게 나를 더하는 다른 풍경 

나에 나를 더한다. 과거의 나에 현재의 나를 더한다. 감정이 고양됐던 순간에 봤던 풍경을 현재의 내가 그린다. “선택하고 포착한 순간의 풍경은 당시 ‘나’의 감정의 집약체”이고, “작업의 결과물은 현재의 ‘나’”이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하나의 형상”이 되는 시간이 도래한다(석사학위청구논문 「창문을 통해 본 이경」, 이하 「이경」). 그래서 김민지의 작업은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만나는 작업이다. 현재의 작가 안에는 늘 과거의 작가가 함께한다. 그의 작업은 내가 나를 초대하는 작업이다.

다른 풍경

  
김민지 작가는 2020년 <열 번째 나무>라는 작업을 그렸다. 타지 생활이 10년 차 되는 해였다. 그의 작업에는 줄곧 한곳에 뿌리내리지 못한 자의 애수와, 타지 생활하면서 느낀 고향을 향한 애틋함, 그리고 고향을 오가는 길에서 느꼈던 설렘이 복합적으로 들어 있(었)다. 한 장소에 1년 이상 지내지 못하며, 삶의 장소를 12년 동안 옮겨 다녔던 작가에게 한곳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나무는 동경의 대상이자 닮고 싶은 존재였다. 그리고 그 안에는 정착에 대한 바람이 담겨 있었다.
작가는 최근 춘천에 자리 잡았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17살 때부터 12년간 고향을 떠나 이곳저곳에 잠시 머물렀던 삶을 이제 마감했다. 하지만 작가의 작업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이동하는 삶을 살았던 시기, 다시 말해서 정착 이전의 작업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 시기 김민지의 주요 작업 주제는 고향을 향한 향수였다. 이 시기에 줄곧 그렸던 <비 오는 139km의 풍경> 연작은 타지 생활과 고향에 대한 향수가 스며 있다. (139km는 작가의 고향인 인제와 대학과 대학원에 다니며 타지 생활의 중심이 된 서울 사이의 거리다.) 김민지는 타지 생활 중에 때때로 부모님께서 계시는 고향을 오갔는데, 그때마다 자주 비가 내렸다고 한다. 그가 고향을 오가는 길에 버스 차창을 통해 바라보던 비 내리는 풍경은, “고향에서의 추억이나 서울에서 겪었던 일들을 떠올리게 하는 대상들을 상기시키는” 감정적 풍경이었다(「이경」). 차창에 맺히거나 흘러내리는 비는 눈물을 연상시키며 슬픔과 그리움의 정조를 형성한다. 그리고 “모노톤의 표현은 물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색감들을 배제 시키고 상상력으로 채울 수 있는 여지를 준다.”(「이경」) 이러한 요소들은 작가가 느꼈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정착하지 못한 삶에 대한 정서를 느끼게 한다.
작가는 異(다를 이)와 景(경치 경)을 결합해 이런 풍경을 ‘이경(異景)’이라 부른다. 쉽게 말하면 ‘다른 풍경’이다. (작가는 이경을 ‘색다른 풍경’이라고 해석한다. 여기서는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더 명확하게 하려고 ‘다른 풍경’이라 고쳐 쓴다.) 김민지의 ‘다른 풍경’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나는 ‘감정적 풍경’이다. 작가가 그린 풍경은 감정이 담긴 풍경으로,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린 풍경이 아니라 “감정의 집약체”로서 ‘다른 풍경’이다. 다른 하나는 ‘생경한 풍경’이다. 작가는 “익숙했던 자연 풍경이 이동하는 삶을 통해 낯설어지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그에게 이경이란 “익숙했던 풍경이 여행지가 된 듯 낯설게 느껴지는 생경한 풍경이다.”(「이경」) 사실 작가가 말하는 이경은 후자인 생경한 풍경이 더 적확하다. 하지만 그 생경한 풍경이 결국 감정적 풍경이므로, 이 두 의미는 다른 층위에 존재하면서도 하나로 묶일 수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 이경이 형식적으로도 ‘다른 풍경’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초점이 흐린 사실적인 풍경과 창에 맺힌 선명한 물방울들을 그리던 작가는 같은 형상의 두 작품에 하나는 물방울을 그리고, 다른 작업은 물방울 없이 그린 후 병치한 <나.무>를 2020년에 선보였다. 이 작품은 물방울의 유무가 가장 큰 특징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이 오직 나무 한 그루만을 그렸다는 점이다. 기존 작업이 봤던 풍경을 그대로 그리는 데 주안점을 뒀던 반면, 이 작품부터 여백과 개체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면모를 보인다. 더불어 추상화되는 양상도 엿보인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최근 창작한 정주(定住) 작업에서 변주되어 다시 나타난다.) 이렇게 추상화되는 양상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조각난 풍경> 연작(2020)에서 분명해진다. <조각난 풍경>은 기존에 그렸던 이미지 중 주변부의 어느 한 부분을 확대해서 그린 작업으로, 사실적 풍경의 부분임에도 추상화처럼 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업에 관해 작가는 “뒤쪽에서 흐릿하게 묘사되었던 풍경들이 확대라는 변형을 통해 배경에서 주체로 변하게 된다.”라고 말한다(「이경」). 이후 같은 맥락에서 <나 더하기 나>(2021)를 선보였다. 이 작업은 정형화된 크기의 여러 작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개별적으로 한 작품이 되기도 하고, 작업이 모이는 숫자와 배열 방식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로 나타나는 가변적인 작업이다. <나.무>와 <조각난 풍경>, <나 더하기 나> 작업은 기존의 사실적인 이경과는 형식적으로 ‘다른 풍경’이다. 이러한 형식적 변모는 ‘생경한 풍경’에 관한 더 깊은 고민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풍경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당시 느꼈던 낯선 감정을 전달하는 표현방식”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해 고민했고(「이경」), 그 고민의 결과로 이와 같은 형식적으로 ‘다른 풍경’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중력의 시간, 나무의 시간

 
김민지의 작업 변화는 복합적이다. 고향을 오가는 길이 점점 낯설어지는 느낌은 초점이 흐린 풍경으로 등장하다가 이전에 그렸던 풍경의 부분을 확대하여 추상으로 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변주하는 양상을 보이는가 하면, 초점이 흐린 나무를 단독으로 그리기도 한다. (기존 풍경 작품의 부분 확대 작업은 추상으로 보이게 하는 방식이지 추상은 아니다. 풍경의 일부, 즉 자연의 일부가 확대된다고 자연의 사실성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이 결과물은 추상이라고 볼 수 없다.) 또한, 풍경의 부분을 확대한 여러 작업을 모아 가변적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을 보여주기도 하고, 기존의 정형화된 작품 배치 방식과는 다르게 의미가 담길 수 있도록 작품들을 배열하거나 배치함으로써 표현의 다변성을 넓히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작업 방식은 현재 동시적으로 나타난다. 여전히 사실적으로 그리는 작업이 있는가 하면(그 작업 수는 현저히 줄었다), 부분을 확대하여 추상으로 보이게 하는 작업과 나무를 단독으로 그리는 작업을 병행하는 양상을 보인다. 또한, 전시의 성격에 따라 작업들의 배치와 배열을 가변적으로 하거나 의미를 싣는 방식으로 조직하는 등 다양한 전시 디스플레이를 선보이고 있다. 이 방식들은 표현 방식과 전시 디스플레이 방식으로 나뉘는데, 이 둘은 서로 유기적으로 엮이기도 하고 단독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특히 최근 작가가 주요하게 탐색하고 있는 작업 방식은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작품 배열 및 배치와 초점이 흐린 나무를 단독으로 그리는 방식이다. 전자는 그림들을 의미를 담아 배치하고 그 배치가 지닌 의미를 사유하게 함으로써 마치 글의 행간에서 의미를 찾듯이 그림과 그림 사이의 역학 관계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후자는 여행자처럼 삶의 터전을 옮겨 다니던 작가가 이제 정주자로서 한곳에 머물게 되면서 자신의 현재 모습(정주자)을 나무에 투영한 표현 방식이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표현의 변화로, 나무를 단독으로 그리는 후자의 방식이다. 이 작업은 2020년의 두 작업, 나무와 여백으로 표현된 <나.무>와 한 그루 나무가 주요한 풍경인 <열 번째 나무>가 결합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작가는 이동을 위해 그의 표현처럼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며 삶의 규모를 한껏 가볍게 했다. 삶의 중력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 작가는 한곳에 정착했다. 땅에 뿌리내린 나무의 시간, 강한 중력을 느끼는 중력의 시간을 살게 된 것이다. 따라서 2020년 그렸던 <열 번째 나무>가 고향에 대한 향수 혹은 한곳에 뿌리내림에 대한 바람을 담은 작업이라면, 2022년 그린 배경 없이 홀로 서 있는 나무는 한곳에 뿌리내린 작가의 현재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다. 더불어 빗물의 형상도 변했다. 빗물의 수가 줄었고, 다양한 형상으로 표현함으로써 여러 감정을 드러내는가 하면, 빗물 방울인지 모호하게 표현하거나 아예 빗물을 없앰으로써 이전의 사실적인 풍경에서 그리던 빗물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들게 한다.
김민지는 당분간 정착에 대한 사유를 작업으로 풀어갈 것 같다. 그가 정착한 곳이 고향 인제는 아니지만, 유사한 풍광과 날씨와 분위기를 지닌 고향과 인접한 춘천이다. 현재 작가는 단순히 물리적 정착을 정착이라 해야 할지, 정서적으로 정착해야 진정한 정착이라 말할 수 있을지, 정착의 의미에 관해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12년간 이동하는 삶을 살면서 그 삶에 대한 사유를 그렸듯이, 앞으로 얼마간은 정착한 자신의 모습을 사유하면서 그에 관한 작업을 보여줄 것 같다. 김민지가 보여줄 작업은 이전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그가 그릴 내일의 작품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기대감으로 충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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